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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23일
명박이 영어교육 명박이 건보민영 명박이 반도운하 휘몰이 휘몰이네 거짓말 밥먹듯이 머슴들 주노전도(主奴顚倒) 주인손 곰방대가 === 3.4율에 맞추어서 즉석에서 썼습니다. *주노전도(主奴顚倒) - 주객전도의 변형, 패러디. *휘몰이 - 한 곳으로 휘몸. 나에게 까는 작품 영감을 주는 실용 정부에게 박수를! 짝짝짝!! 2007년 05월 30일
![]() 초치검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검입니다. 스사노오가 8개 머리 달린 큰 뱀인 야마타노 오로치를 베고 얻은 검이라 합니다. 흐... 도검 소지증이 필요할 것 같은 물건 입니다. 길이는 얼추 70cm가 넘고, 적당히 자른 나무를 자루로 삼아서 날을 쇠로 감아 고정시킨 놈입니다. 출처는 사무실 창고 깊은 곳에 있던 캐비닛 속입니다. 용도가 풀베기 용이라고 추측하시는 사장님의 말씀. 그래서 제가 명칭을 붙이길... '초치검'. 다른 이름은 '짝퉁 커틀라스'.
# by 나길글길 | 2007/05/30 14:39 | 트랙백
2006년 12월 10일
기내 스피커에서 기장이 격양된 목소리로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꼭 매고 진정해달라고 외친다. 승무원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갈수록 크게 흔들리는 기체 사정 때문에 패닉에 빠진 승객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비행기 허리 부근에서 우직하고 나무젓가락이 꺾어지는 소리가 났다. 기내 바닥 중간쯤에 폭 2cm, 길이 7cm 정도의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일만 미터 상공의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쿵 소리를 내며 기체가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승객 중 한 명이 우측 날개 엔진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고 외쳤다. 문형은 쿨쿨 자고 있다가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다. 그는 도로 자려고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마구 흔들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기에 홱 밀쳐버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야생성으로 무장한 어떤 아프리카 부족이 아니란 말이다. 잠에서 눈을 뜬지 몇 초 만에 깨끗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외쳤다. 잠결에 어째서 저 비행기를 확인하지 못했냐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와 실수로 누락된 것 같다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살고 싶다는 여자의 비명소리를,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한 사내의 목소리도, 신을 원망하는 노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문형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깊이 잠이 들어서 안전벨트를 맨 채였고, 자느라고 머리와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자세는 낮았다. 왼쪽에서 천둥이 치듯 널빤지 같은 물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문형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눈을 번쩍 떴다. 창문 밖을 내다보자 크고 작은 푸르스름한 번개가 구름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적란운 안에라도 들어온 건가? 그런 것 치고는 푸른 번개가 흉흉했다. 스피커에서 기장은 이제 안전착륙은 포기하고 불시착하겠다는 방송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극도의 혼란 상태에서 공포감의 상실로 승객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게 착륙하라는 협박성이 다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기장실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이 안전비행을 이유로 앞을 막아섰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쳐들고 앞을 본 문형은 그들이 다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기류라도 타고 있는 모양인지 비행기는 엔진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글라이더처럼 오랫동안 비행하고 있었다. 흔들림이 좀 전보다 안정되었지만 기내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승객 들 중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걸친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상의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빼어들고 승객들을 향해 휘둘러 보이며 윽박지르면서 당장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강한 폭풍이 기체를 강하게 때렸다.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행해졌지만 갈수록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흔들거리고 기내 바닥에 생긴 균열이 몇 배로 커지면서 기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고함 같은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형의 머릿속에 그리운 가족의 모습이 떠오르려다가 어디서 나왔는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해서 의자 손잡이든 뭐든 꽉 붙들게 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 창문이 깨지고 흙이 들어오는 바람에 약간의 흙을 먹어야 했다. 뱉어낼 여지는 없었다. 다음 충격에 대비해서 몸을 최대한 지켜야 했다. 어깨 위에 사람 머리통 하나가 툭 얹어졌다. 아까 흔들어 깨우던 옆자리 승객이었다. 벌써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서 목이 돌아가고 혀를 쑥 내민 채 뒈졌다. 그리고 날아와서 어깨에 보기 싫은 머리를 얹은 거겠지. 문형은 왼쪽 어깨를 내렸다. 시체의 머리가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다리를 한 번 떨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2006년 12월 10일
※대 악당※ 문형은 왼손을 벌려서 엄지와 검지로 목의 경동맥 부분에 살짝 댔다. 오른손은 맥을 짚듯이 왼손 손목에 댔다. 맥이 심한 운동을 하고 난 뒤처럼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단순한 미신이잖아?’ 여행 전에 이런 식으로 맥을 짚어서 불길함을 점칠 수 있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다. 다만 맥을 짚는 쪽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은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심장이 뛰는 거라고 생각했다. 뉴욕 발 인천 행 0945시 비행기에 어서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문형은 트렁크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게이트로 향했다. 검색을 무난히 통과하는데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의 사내 두 명이 검사도 받지 않고 단지 신분증 하나로 통과하는 걸 봤다. FBI나 CIA 요원쯤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면세점에 들러 가족에게 선물로 줄 초콜릿 두 상자를 사서 가방 안에 넣었다. 잭이나 가브리엘라 같은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은 동양문물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기념품을 사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아예 쳉 린 같은 한류 추종자는 인기 드라마의 DVD 세트를 사달라며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선물을 사서 넣으니 그들이 생각났다. 인사동 같은 데에 가면 적당한 걸 구입할 수 있겠지. 음반점에 드라마 DVD는 널렸을 테고 말이다. 9시 15분이 되어 탑승을 시작했다. 스튜어디스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창가 좌석에 앉았다. 검은 선글라스의 사내들은 눈에 보이는 대각선 앞으로 가운데 좌석에 착석했다. 45분이 되어 비행기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몇 번 타 봤지만 이때는 몸이 흔들거려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다른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고 있었다. 활주로에 다 와서 곧 이륙하니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곧이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 할 때 몸이 눌리면서 약간 메슥거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안전하게 비행기가 이륙하자 문형은 가지고 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잠시 읽다가 이내 좌석을 뒤로 눕히고 잠들었다. 안전벨트는 꼭 맨 채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와 허리가 숙여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평양 상공을 한창 날고 있을 때,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문형은 눈을 살며시 떴다가 도로 눈을 감았다. 다른 승객들이 불안해하며 웅성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묵직한 강철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이 기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우지끈하고 나무나 철골 같은 것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아마 벌써 죽은 사람이거나 이마에 벼락이 떨어져도 눈도 깜박 않을 태연한 심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조금 전 기체가 흔들릴 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자가 정면의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이어 의자 모서리에 찧는 바람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뇌진탕으로 통로에 쓰러져있다. 기체 중간 오른편에 앉은 서양인 중년 여성이 전보다 큰 흔들림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어도 목뼈에 금이 갈 정도로 앞 의자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서 정신을 잃은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흔들림 때문에 부상자는 속출하고 있어도 사망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06년 11월 22일
마을로 끌려온 웰레이즈는 모든 장비를 해제 당하고 나무 감옥에 감금되었다. 성인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꽁꽁 결박되진 않았다. 오래되어 속이 빈 고목을 이용한 감옥은 마법이 걸려있어서 탈출은 힘겹다. 조용히 앉아서 탈출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위는 막혀있고, 바닥은 단단해서 아무 도구 없이 터널을 파는 것은 무리였다. 틈새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아침에는 모조리 공격과 가속, 투명 같은 보조 마법들만 메모라이즈Memorize 했다. 감옥 탈출 마법은 아직 습득하지 않았다. 내일이 된 다해도 스펠 북Spell Book이 없어서 마법 갱신을 할 수 없어서 탈출은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어린 여자 엘프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갇힌 게 누구냐 했더니만….” 디아나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로, 시선은 수평이나 깔보듯이 내려다보는 것 같은 표정이 마치 포악한 동물 조련사가 우리에 갇혀서 벌벌 떨고 있는 겁 많은 야생 짐승을 보는 듯 했다. 성인식을 하는 언니를 따라 왔다는 디아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 제안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쇠 하나를 눈앞에서 흔들어보였다. “이거 필요하지 않아?” 그것은 분명히 이 감옥을 나갈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몰라도 감옥을 나간다면 다시 한 번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 간곡하게 열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디아나는 열쇠를 등 뒤로 숨기면서 교환조건을 제시했다. “풀려나는 대가로 네 스태프를 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고개를 흔들었다. 신목God's Tree의 나뭇가지로 만든 그것은 마법사에게나 어울리는 물건이다. 활을 다루는 그녀가 어째서 탐을 내는지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대답을 거부했다. 단지 예스냐? 노냐? 로 대답만을 요구했다. 대답은 당연히 노이었다. 디아나는 협상이 결렬되자 매몰차게 뒤돌아 가버렸다. 빠져나가는 것이 급한지라 다른 상응할만한 아티팩트 등을 제시했지만 그녀의 요구 조건은 오직 스태프 하나였다. 디아나는 가버렸고, 웰레이즈는 감옥 문을 붙들고 쾅쾅 흔드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몸부림이었다. 가련한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또 있었다. 형이었다. 그는 어쩌면 문을 열어줄 수 있는 마법을 습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비굴해 보이는 자세로 간곡히 애원했으나 형은 조소를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하나 메모라이즈 하긴 했는데, 오후에 깜박 잊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잠긴 창고 문을 여는데 사용했지.” 얄밉게도 그는 홱 돌아가 버렸다. “젠장맞을!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문을 발로 차면서 소리소리 질러대었지만 축제 분위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웰레이즈는 저항을 포기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로드, 로드.” 고개를 들어보니, 벨리슈가 문틈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 아직 이 녀석이 있었지. 작은 희망이 생겼다. “꺼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웰레이즈는 당장 디아나에게 다가가서 열쇠를 가져오게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쯤 그녀는 추종하는 세력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접근은 여의치 않을 것이고, 장비는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효과적이고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형의 방에 문을 열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다는 것에 적은 확률이나마 걸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명령을 내리려는데, 벨리슈가 숨을 몰아쉬고, 낯빛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자정에 가깝다. 성인식 기간 중 자정에는 실츠므슈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까닭에 사악한 생명에게는 중압이 걸린다는 페널티가 있다. 웰레이즈는 체념하듯 털썩 주저앉았다. “걱정 마십시오. 로드. 중압이 더 심해지기 전에 어서 제가 할 일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장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날개를 힘껏 퍼덕여서 간신히 떠 있었다.
잠시 후에 벨리슈가 돌아왔다. 놀랍게도 그는 입에 열쇠를 물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가져왔느냐고 묻자, 대답 한다. “특별히 밝은 빛으로 위장해서 유인한 다음에 몰래 옆으로 다가가서 훔쳤습니다.” 몸 여기저기에 빛나는 것이 묻어서 야광처럼 희끄무레하게 빛나고 있다. 위장하기 위해 어떤 빛나는 물질을 뒤집어 쓴 모양이다. 왠지 눈물이 찔끔 났다. 10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감동받아 눈물 흘린 적은 없었다. 열쇠를 건네받아서 감옥 문을 열었다. 다시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쁨에 문을 벌컥 열었더니,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지축을 뒤흔드는 여러 발의 포성과 함께 폭죽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전사들이 달려왔다. 하늘에는 색색의 꽃들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함정이었다. 감옥 문이 안에서 열리면 설치한 장치에 의해서 폭죽이 폭발하도록 되어있고, 축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 죄수의 탈옥을 알 수 있는 멋들어진 장치이다. 이런 생각을 할 놈은 마을에 단 한 명 뿐이다. 나중에 반드시 한 방 먹여주마. 늙다리 너구리 장로여. 성인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 제사 문을 읊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웰레이즈는 성인이 되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예식이나 의무가 아닌 탈주 미수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남자 문 엘프에게는 이름 앞에 ‘문Moon’자를 붙이는 것이 허락된다. 여자들은 ‘루나Luna'를 붙이게 된다. 이번에 성인이 된 엘프들은 각자 이름 앞에 ‘문’과 ‘루나’를 붙였다. 그러니 웰레이즈는 ‘문-웰레이즈’가 된 것이었다. 장로는 판결을 서두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어디에서 봉사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지금껏 탈주 미수자에 대한 마을의 재판 전례가 그러했다. “웰레이즈를 10년 간 클라이믐 산으로 보내도록 한다.” 판결은 의외로 가벼운 편이었다. 클라이믐 산은 문-포레스트에서 남쪽으로 이틀거리에 불과한 거리의 산이다. 그에게는 떼어놓을 수 없는 스태프와 약간의 건량, 몇 가지 쓰던 물품이 쥐어졌다. 그리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십년간은 돌아올 수 없지만, 드디어 마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숲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언덕에 올라가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게만 느껴졌다. 액슬란트는 파이프에 새로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하는 게군. 그때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웰레이즈는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면서 천정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뭔가 깊이 생각할 때나 현재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다. “진짜 모험은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이네. 이야기 순서대로라면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해야겠군. 비록 짧지만….” 당사자가 있으면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몇 십 년 전에 필멸자의 운명이 다가오기 전에 혼돈을 받아들였다.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를 메모해두고, 아직도 잘 잊히지 않는 그때의 일을 천천히 되짚어갔다. 2006년 11월 21일
마을로 끌려온 웰레이즈는 모든 장비를 해제 당하고 나무 감옥에 감금되었다. 성인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꽁꽁 결박되진 않았다. 오래되어 속이 빈 고목을 이용한 감옥은 마법이 걸려있어서 탈출은 힘겹다. 조용히 앉아서 탈출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위는 막혀있고, 바닥은 단단해서 아무 도구 없이 터널을 파는 것은 무리였다. 틈새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아침에는 모조리 공격과 가속, 투명 같은 보조 마법들만 메모라이즈Memorize 했다. 감옥 탈출 마법은 아직 습득하지 않았다. 내일이 된 다해도 스펠 북Spell Book이 없어서 마법 갱신을 할 수 없어서 탈출은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어린 여자 엘프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갇힌 게 누구냐 했더니만….” 디아나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로, 시선은 수평이나 깔보듯이 내려다보는 것 같은 표정이 마치 포악한 동물 조련사가 우리에 갇혀서 벌벌 떨고 있는 겁 많은 야생 짐승을 보는 듯 했다. 성인식을 하는 언니를 따라 왔다는 디아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 제안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쇠 하나를 눈앞에서 흔들어보였다. “이거 필요하지 않아?” 그것은 분명히 이 감옥을 나갈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몰라도 감옥을 나간다면 다시 한 번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 간곡하게 열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디아나는 열쇠를 등 뒤로 숨기면서 교환조건을 제시했다. “풀려나는 대가로 네 스태프를 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고개를 흔들었다. 신목God's Tree의 나뭇가지로 만든 그것은 마법사에게나 어울리는 물건이다. 활을 다루는 그녀가 어째서 탐을 내는지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대답을 거부했다. 단지 예스냐? 노냐? 로 대답만을 요구했다. 대답은 당연히 노이었다. 디아나는 협상이 결렬되자 매몰차게 뒤돌아 가버렸다. 빠져나가는 것이 급한지라 다른 상응할만한 아티팩트 등을 제시했지만 그녀의 요구 조건은 오직 스태프 하나였다. 디아나는 가버렸고, 웰레이즈는 감옥 문을 붙들고 쾅쾅 흔드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몸부림이었다. 가련한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또 있었다. 형이었다. 그는 어쩌면 문을 열어줄 수 있는 마법을 습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비굴해 보이는 자세로 간곡히 애원했으나 형은 조소를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하나 메모라이즈 하긴 했는데, 오후에 깜박 잊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잠긴 창고 문을 여는데 사용했지.” 얄밉게도 그는 홱 돌아가 버렸다. “젠장맞을!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문을 발로 차면서 소리소리 질러대었지만 축제 분위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웰레이즈는 저항을 포기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로드, 로드.” 고개를 들어보니, 벨리슈가 문틈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 아직 이 녀석이 있었지. 작은 희망이 생겼다. “꺼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웰레이즈는 당장 디아나에게 다가가서 열쇠를 가져오게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쯤 그녀는 추종하는 세력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접근은 여의치 않을 것이고, 장비는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효과적이고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형의 방에 문을 열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다는 것에 적은 확률이나마 걸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명령을 내리려는데, 벨리슈가 숨을 몰아쉬고, 낯빛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자정에 가깝다. 성인식 기간 중 자정에는 실츠므슈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까닭에 사악한 생명에게는 중압이 걸린다는 페널티가 있다. 웰레이즈는 체념하듯 털썩 주저앉았다. “걱정 마십시오. 로드. 중압이 더 심해지기 전에 어서 제가 할 일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장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날개를 힘껏 퍼덕여서 간신히 떠 있었다.
잠시 후에 벨리슈가 돌아왔다. 놀랍게도 그는 입에 열쇠를 물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가져왔느냐고 묻자, 대답 한다. “특별히 밝은 빛으로 위장해서 유인한 다음에 몰래 옆으로 다가가서 훔쳤습니다.” 몸 여기저기에 빛나는 것이 묻어서 야광처럼 희끄무레하게 빛나고 있다. 위장하기 위해 어떤 빛나는 물질을 뒤집어 쓴 모양이다. 왠지 눈물이 찔끔 났다. 10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감동받아 눈물 흘린 적은 없었다. 열쇠를 건네받아서 감옥 문을 열었다. 다시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쁨에 문을 벌컥 열었더니,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지축을 뒤흔드는 여러 발의 포성과 함께 폭죽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전사들이 달려왔다. 하늘에는 색색의 꽃들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함정이었다. 감옥 문이 안에서 열리면 설치한 장치에 의해서 폭죽이 폭발하도록 되어있고, 축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 죄수의 탈옥을 알 수 있는 멋들어진 장치이다. 이런 생각을 할 놈은 마을에 단 한 명 뿐이다. 나중에 반드시 한 방 먹여주마. 늙다리 너구리 장로여. 성인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 제사 문을 읊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웰레이즈는 성인이 되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예식이나 의무가 아닌 탈주 미수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남자 문 엘프에게는 이름 앞에 ‘문Moon’자를 붙이는 것이 허락된다. 여자들은 ‘루나Luna'를 붙이게 된다. 이번에 성인이 된 엘프들은 각자 이름 앞에 ‘문’과 ‘루나’를 붙였다. 그러니 웰레이즈는 ‘문-웰레이즈’가 된 것이었다. 장로는 판결을 서두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어디에서 봉사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지금껏 탈주 미수자에 대한 마을의 재판 전례가 그러했다. “웰레이즈를 10년 간 클라이믐 산으로 보내도록 한다.” 판결은 의외로 가벼운 편이었다. 클라이믐 산은 문-포레스트에서 남쪽으로 이틀거리에 불과한 거리의 산이다. 그에게는 떼어놓을 수 없는 스태프와 약간의 건량, 몇 가지 쓰던 물품이 쥐어졌다. 그리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십년간은 돌아올 수 없지만, 드디어 마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숲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언덕에 올라가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게만 느껴졌다. 액슬란트는 파이프에 새로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하는 게군. 그때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웰레이즈는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면서 천정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뭔가 깊이 생각할 때나 현재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다. “진짜 모험은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이네. 이야기 순서대로라면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해야겠군. 비록 짧지만….” 당사자가 있으면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몇 십 년 전에 필멸자의 운명이 다가오기 전에 혼돈을 받아들였다.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를 메모해두고, 아직도 잘 잊히지 않는 그때의 일을 천천히 되짚어갔다. # by 나길글길 | 2006/11/21 22:11 | 트랙백
2006년 11월 19일
탈출까지의 계획에는 마을의 일원으로 축제 준비도 도우면서 주위의 눈을 속일 필요가 있었다. 성인이 된 엘프에게 즉각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진보적인 젊은 엘프가 이에 대해 장로에게 건의한 바 있었다. 그에 대한 장로의 대답은 이러했다. “숲은 베푼다. 끊임없이. 숲은 받지 않는다. 조금도.” 젊은 엘프는 더 말하지 않았고, 장로는 멀리 하늘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성인식을 한 엘프에게는 차라리 아스트 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장로의 지루한 축사를 가장한 연설과 함께 2년 더 교육을 위해서 마을에서 멀리 나갈 수 없다. 2년은 앞으로 남은 살아갈 날에 비해서 너무나도 짧지만 조금도 기다릴 수 없었다. 웰레이즈의 자유혼은 지금 당장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느 덧, 성인식 전날이 되었다. 마을의 모든 엘프들이 중앙 광장에 모여서 과실주와 음식을 장만해놓고 모닥불을 피우고 주위에 빙 둘러섰다. 이번 성인식에는 웰레이즈를 포함해서 네 명의 엘프들이 성인 자격을 얻게 된다. 전야제 축제가 시작되었다. 전야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즈음에 웰레이즈는 과실주로 인한 취기를 핑계로 슬며시 파티 자리를 이탈했다. 숙부에게 눈짓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면서 나무 열매 몇 개를 쓱 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열매에는 술기운을 해독하는 성분이 있어서 어느 정도 정신이 맑아졌다.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가서 스태프와 미리 꾸려둔 배낭을 메고 나왔다. 모든 엘프들의 신경은 마을 중앙의 모닥불에 쏠려있다. 웰레이즈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록울 마을로 가는 큰길을 택했다. 한참 후에 장로는 어떤 전사 엘프로부터 한 장의 쪽지를 받을 수 있었다. 영웅의 길을 막지마라. 이걸 누가 쓴 것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영웅담에 심취해 있는 엘프는 마을에 단 둘뿐이다. 쪽지를 가져온 엘프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은 장로는 엘프에게 귀엣말로 지시 사항을 내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크게 외쳤다. “여러분! 이웃 마을 골드 엘프 형제들이 이곳에서 성인식을 하고 싶다는 어린 엘프들을 보내오고 있답니다! 지금 나는 그들을 정중히 맞이하여 데려올 형제들을 보냈소! 그들이 온다면 크게 환영합시다!” 이웃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55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토름 동부에서 유일하게 100마일 이내의 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동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몇몇 전사 엘프들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겼던 엘프들은 환호성을 올리면서 잔을 높이 들어올린다. 축복받은 숲이라는 이곳에서 성인식을 하고 싶은 엘프들이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웰레이즈의 숙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10분간 정비를 한다고 시간을 끌었다. 10분 후에 탈주자 추격대가 편성되어 록울 마을로 통하는 길을 달려갔다. 엘프들은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바람이 지나가듯이 숲을 달렸다. 이 광경을 숲길 옆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예상대로 추격대는 록울 마을까지 난 큰 길로 향하고 있었다. 웰레이즈는 마을을 빠져 나올 때 곧장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중간에 샛길을 발견하고 거기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추격대가 지나간 후에 샛길을 달렸다. 아마도 그들은 큰 길을 자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한참 달려서 샛길을 통한 출구에 도달했을 때, 어디선가 화살 한 대가 날아와 발끝에 박혔다. “조카여. 너의 패턴은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느니라.” 비아냥거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곳으로 올 줄 알았다고 짐작한 여유 있는 목소리였다. 어느 비밀스런 길로 가로질러 오기라도 했는지 숙부가 추격조원 서넛과 출구 밖에 서 있었다. 그는 검을 빼들고 있었고, 뒤의 부하들이 좌우를 에워싼 채로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숙부님, 절 보내주시지 않으려 십니까?” 숙부의 대답은 매몰찼다. “10분이나 여유를 주지 않았느냐? 그동안에 따돌리지 못한 네 잘못이다.” 숙부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그들은 웰레이즈의 팔을 뒤로 돌려 결박 지었다. “지금쯤이면 손님들이 도착했을 거다. 돌아가자.” 불운하게도 웰레이즈의 첫 번째 탈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2006년 11월 19일
책은 여기서 끝을 맺고 있다. 가설과 소문을 들어보면 다섯 기사들에게는 여러 이종족 친구들이 있기도 했고, 그들의 무훈담에 여러 번 수정이 가해졌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원본을 찾고 있다. 거기에 알고 싶은 모든 진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도서관 입구가 시끌벅적해졌다. 웰레이즈는 즉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는 직감 수준이었다. 마을로 먼저 돌아와서 시치미를 뚝 떼고 책을 읽고 있었다. 뒤에 돌아온 추적대가 대체 어디있었느냐고 추궁하였다. 웰레이즈는 숲 깊은 곳에 들어가 보았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너는 없었다.” 웰레이즈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바보, 길이 엇갈렸나보지.” 그러자 추적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돌아갔다. 추적대가 나간 뒤에 웰레이즈는 책장 부근에 갖가지 아티팩트로 위장해놓은 부분을 헤쳤다. 비밀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서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미리부터 준비해 두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준비해놓은 배낭이 보였다. 벽에 기대어 둔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어릴 때에 얻은 신성한 나무의 가지로 만들어서 보물 목록 1호일정도로 아끼는 스태프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단검, 옷가지를 준비해두었다. 건량을 조금 더 준비하면 될 것이다. 배낭 안의 내용물은 과일과 빵 말린 것들이 있다. 그것으로 며칠은 버틸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어떻게 이후를 대비하냐는 것이었다. 장기간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어린 엘프로서는 가장 걱정되는 문제였다. 또한 추격대를 뿌리치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웰레이즈는 뇌물을 생각했다. 추격대와 전사대를 이끄는 숙부에게 뇌물을 주고 탈출을 눈감아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 떠올랐다. 웰레이즈는 즉시 뇌물을 준비했다. 숙부는 어머니가 구운 쿠키를 홍차와 함께 먹는 것을 좋아했다. 부엌으로 가니, 마침 고맙게도 어머니는 외출한 모양이고, 쿠키를 담아두는 병에는 초코칩이 박힌 쿠키가 가득 있었다. 반 정도 따로 싸서 숙부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봐요, 숙부님! 사랑스런 조카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쿠키를 가져왔어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숙부는 마침 전에 보았던 여자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조카가 왔구나. 무슨 일이냐?” 숙부가 여자와 있는 것을 보니 몸이 굳었다. 여자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쿠키를… 좀 가져왔습니다. 홍차랑 함께 먹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숙부는 기쁜 모양이었다.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드디어 조카가 철이 들었나보구나. 숙부를 생각해서 좋아하는 쿠키고 가져올 줄 알고. 마침 손님에게 대접할 쿠키가 하나 밖에 없어서 곤란해 하던 참이었단다.” 숙부는 가져온 쿠키를 받아들고 테이블 위에 펼쳤다. “앉아라. 마침 동방에서 직수입된 좋은 홍차 잎을 구입했단다. 쿠키와 함께 먹으면 맛있을 거다.” 그날따라 숙부는 웃고 있었다. 평소의 엄숙한 그가 아니었다. 웰레이즈는 쭈뼛거리며 빈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에 숙부가 찻잔을 들고 왔다. 하얀 도자기에 동방의 무늬가 그려진 고가의 찻잔이었다. 웰레이즈 앞에 내려놓고 마시기를 권했다. 웰레이즈는 차가 넘어가지 않았다. 숙부가 쿠키를 먹으려다가 손바닥을 탁 쳤다. “그러고 보니 초면이지? 이쪽은 루나-이힐네 양. 웰레이즈, 네 숙모가 될 여성이다.” 잠시 숙부와 여자를 번갈아보던 웰레이즈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숙부님. 지금껏 노총각으로 사셨다가 무슨 바람이 부셨기에 결혼하신다는 겁니까?” 숙부는 한번 헛기침을 했다. “누구든 짝을 구하는 것은 본능인 모양이다. 나이가 드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마침 실츠므슈께서 아름답고 착한 이힐네 양을 내게 반려자로 보내주셨다. 우린 한 눈에 반했단다. 성인식 후 석 달이 지나면 식을 올릴 예정이다. 물론 이 축복받은 숲에서. 우리 사이를 축복해 주겠느냐?” “서로 좋아하신다면 말릴 수 없지요.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전 이 숲에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고 숙부가 묻는다. 웰레이즈는 숲을 떠날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눈 감아 줄 것을 청했다. 숙부는 차와 쿠키를 한 입 먹고 말을 꺼냈다. “너의 자유혼은 누구든 속박할 수 없을 거다. 아마도 우리 가문은 대대로 자유를 사랑하는 자가 한 명씩은 태어나는 것 같구나. 나도 젊었을 적에는 너와 똑같았단다.” 숙부의 표정은 평소의 엄한 모습이 아니었다. 엷은 미소를 짓고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숙모가 옆에서 숙부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숙부는 그녀에게 찡긋 윙크만 했다. “웰레이즈, 나는 마을의 전사대와 추격대를 이끌고 있다. 탈주자를 잡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내 성격을 잘 알 것이다. 난 널 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물을 받았으니 탈출 전에 내게 신호를 보내라. 10분 후에 널 추격하겠다. 그 사이에 멀리 달아나 보거라.” “고맙습니다. 숙부님.” 웰레이즈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숙부는 밖을 나가는 조카를 위해 실츠므슈에게 나이 들어서 처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 일행에 대한 경구들 *웰레이즈는 시와 노래, 빈정대기, 독서, 언어유희를 즐기기 좋아하며, 평범하게 보이는 문 엘프 청년이기도 하다. *웰레이즈와 마주친다면 대응은 알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 충고하자면, 솔직하게 대하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오랜 친구 같이 대할 것이다. 2006년 11월 19일
전투 전에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양군이 뒤엉켜 싸울 들판을 살펴보다가 정찰을 나온 왕국 기병들에게 붙들린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덜미를 잡혀 적진으로 끌려갔었다. 거기서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영을 시찰하고 있던 그디브 남작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면에서는 행운이었다. 남작은 뻣뻣해지는 짧은 수염이 턱에 덥수룩하게 난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총대장임을 상징하는 진홍 망토를 걸치고, 왕실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그의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두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와 입이 크고 두툼하며 광대뼈가 발달하여 고집쟁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골격이 두텁고 단단해 보였다. 말 잔등에 오르내리는 몸짓이 날렵한 것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병사들이 나에 대한 보고를 했다. 나는 숨길 것 없다고 생각하고 베르키아누스의 바드라는 것을 밝혔다. 남작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보내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가서 전하라. 너의 주인에게 목덜미 깨끗이 씻고 기다리라고.” 그리고 계속 진내 시찰을 하는 것이었다. 내 목을 잡은 병사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진문으로 데리고 가서 나를 도로 진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첩자일지도 모르는 나를 그냥 보내주다니, 의외로 기사도에 충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에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나의 기록에 더할 것이 생겼으니 말이다. 바드에게는 좋은 영감과 글감만 있으면 된다. 아침나절에 시작된 전투는 정오 무렵이 되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디브 남작은 더 이상의 소모전과 시간 끌기를 하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보피엥 경이 이끄는 중장 기병대가 몰래 이동하기 시작했다. 더 쓰지 못하기 전에 화승총병 부대를 둘로 나눠서 공국군의 양 날개 부분을 때리게 하고, 자신도 전열에 나가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보병들에게 밀집 진형을 이루어 단단히 버티게 하면서 우회한 기병이 적당한 지점에 이르자 신호를 보내어 공국군의 옆구리를 치게 하였다. 왕국군 중장 기병들이 쐐기진을 이루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와서 공국군 측면을 짓밟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오른쪽 날개를 공격하던 공국 기병대가 지원하러 왔지만 때는 늦은 뒤였다. 실드 나이트 비스토리아노가 방어에 나섰으나 그는 무슨 까닭인지 몸놀림이 둔했다. 비스토리아노의 방어진은 허무하게 뚫렸고, 중장 기병대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긴 창을 든 경기병들이 돌입하여 전열이 흐트러진 공국군 병사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화승총병들은 이미 후열로 후퇴한 뒤였다. 그디브 남작은 남은 두 개 보병 부대를 진열이 무너져 허술한 쪽에 투입시켰다. 한 번 진열이 무너지면 순식간이다. 뛰어난 장군이라도 이를 쉽게 수습할 수 없다. 공국군의 흐트러진 전열 사이로 왕국군이 기어 들어와서 단검으로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전열은 회복되지 않았고, 급기야 공국군은 비를 맞으며 철퍽거리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왕국군은 공국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많은 포로를 사로잡았다. 다섯 기사 중 네 기사는 휘하 병사들과 함께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싸움에서 다섯 기사 중의 한 명인 랜스 나이트 에르난디스가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여 출격했다가 전사했다. 공국군은 3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왕국군은 딱 절반인 1만 5천이었다. 최후의 전투는 이름처럼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웰레이즈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아이살 회전에서의 참패 이후, 공국 동맹은 모든 내부 싸움을 중지했다. 모을 수 있는 병력은 모두 소집하고, 국경의 방어선을 점검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늘이 기회를 주는 시기에는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는 왕국이다. 조브르덴 왕국에는 또 한 명의 인재가 있었다. 마크=도미네크라고 부르는 인물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개 평민에 불과했으나, 알폰스 1세의 인재 등용 책에 의해 관직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의 무기는 혓바닥이었다. 즉, 달변이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마크는 공국으로 가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공국 간의 결속을 흐트러뜨리게 했다. 아버지 못지않은 에르난디스의 아들을 영입하여서 날이 갈수록 다섯 기사의 유대감은 빛이 나고 있었지만 공국 간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크가 선 작업을 해놓으면, 그디브 남작이 후 작업을 실행한다. 군대를 이끌고 짓쳐 들어가는 것이다. 조르앙 공국으로 시작해서 히에말리스, 로블런트, 에크소디아 공국의 수도를 차례차례 함락시켰다. 공국들 간에 유대감은 간데없고, 침략을 나 몰라라 했다. 이전 같으면 한 쪽이 공격받는 일이 있으면 다른 쪽에서 지원군을 파견 했을 테지만 결속이 와해된 마당에 그런 우정은 없었다. 하르디안은 다섯 기사 중 일인이 태어났으며, 동맹의 맹주를 자청하는 국가답게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방어전에 참가했으며, 게다가 동맹국으로 도망쳐 온 실드 나이트 비스토리아노와 템플러 도멜리쿠스가 공방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 6개월을 버틴 끝에 결국 마지막 공국 수도도 함락되었다. 그때 베르키아누스는 남쪽 성벽 위에서 방어를 독려하다가 배에 두발이나 화살을 맞고는 자리에 누워있었다. 최후로 하르디안이 왕국에게 점령당하여 다섯 공국은 멸망하고 그 이름들은 역사에만 남게 되었다. 성안에 들어선 그디브 남작은 군대에게 자중할 것을 명령하고, 수기의 기사들만 데리고 직접 다섯 기사 중 일인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베르키아누스는 아픈 몸이라서 일어나 앉은 채로 적장을 맞이했다. “용맹스러운 기사께서 어찌하여 일어나 칼을 잡고 말을 달리지 않으시는 게요?” 두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나는 밖에 있어서 그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대화가 끝난 후에 주인은 그디브 남작에게 칼을 청했고, 그것을 들어서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다. 남작은 적장이지만 이름 높았던 명예로운 기사를 양지바른 곳에 정중히 묻어줄 것을 명령하고 왕국으로 개선하였다. 10년 전쟁에서 다섯 기사는 변치 않고 단단한 결속력을 보이면서 끝까지 공국 동맹군을 이끌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동맹이 버틴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공국은 진작 폭군의 손에 멸망당했을 지도 모른다. AA 5년, 나는 『전설의 공국 동맹 다섯 기사들』의 원고를 완성하여 열부를 찍어서 친구들이나 주변 인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주인의 무덤을 지키겠다고 요정 친구에게 말하고는 베르키아누스의 무덤이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 ----------- AA(After Ayisal) - 아이살 이후. 아이살 전투 다음에 다가온 토름의 시기를 역사가들은 이렇게 줄여 부른다. 2006년 11월 18일
나무 상자는 단풍나무로 짜여있고, 강철 자물쇠로 단단하게 잠겨져있다. 잠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상자에는 강력한 마법이 걸려있었다. 섣불리 열었다가는 감전된다. 몇 겹의 덫이 걸린 상자를 지금의 웰레이즈가 해체하기에는 무리인 감이 있다.
우선 자물쇠는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면 한가운데에 열쇠가 놓여있다. 그것으로 강철 자물쇠라는 가장 간단한 락을 해제할 수 있다. 문제는 상자에 걸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트랩 주문Trap Spell이다. 흔들어보면 안에 뭔가 묶음 같은 것이 들어있는 소리가 난다. 보물이 아닌 것이 아쉬웠지만 숙부가 아끼는 것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기심이 강한 웰레이즈는 상자를 열고 안을 보여주기를 숙부에게 청한 적이 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별거 없다. 넌 읽지 않아도 되는 거야.”
“바로 맞췄다. 조카여. 성인이 될 때까지 읽어서는 안 돼.”
숙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의 표정을 미루어 볼 때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조카를 언제까지 어리고 미숙하게 보는 건가. 상자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웰레이즈는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찬스라고 생각하고 나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트랩 마법의 해제에 도전했다.
마법의 배열에 의한 공식을 읽어가면서 회로의 배열을 기억한 다음에 회로의 모양을 따라 역순으로 해체해 들어가면 된다고 『마법의 중급』 책에 쓰여 있기는 하나 모양을 따라 역순으로 해체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술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사되어 돌아오는 데미지는 풀려는 대상에 걸려있는 마법의 세기에 비례한다.
마법의 모든 작업이 그렇듯이 이 방법도 고차원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한 번 하는데 땀을 한 말 쏟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모양을 읽는 단계는 쉽다. 어떤 형태인지 아무 쪽에서나 배열을 읽으면 된다.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방법을 많이 쓴다. 웰레이즈도 그 방법을 썼다.
처음 부분은 사다리꼴이었고, 그 너머는 작은 마름모들의 연속적이고 무질서한 나열이었다.
다음은 원들의 규칙적인 배열이었다. 다만 원과 원들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원 너머는 혼돈에 달했다고 할 수 있는 점들의 향연이었다. 웰레이즈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왔다. 원까지는 읽었으나 다음은 분자 수준의 점들이 가득했다. 마지막은 읽을 수도 없거니와 도저히 해체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숙부가 돌아온 모양이다. 얼른 상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고 창문을 통해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숙부가 돌아오고 있었다.
‘누구야. 저 여자는.’
숙부는 옆에 여자를 데려오고 있었다. 은발에 창백한 피부, 뾰족한 귀는 동족인 문 엘프였지만 마을 사람은 아니다. 못 보던 얼굴이다.
숙부는 본채로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웰레이즈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숙부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일은 보지 못했었기에 신기하게 생각되어졌다. 창문까지 다가간 웰레이즈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는데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숙부는 여자를 벽에 밀어붙이고 하반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숲을 다니면서 간혹 볼 수 있었던 짐승들의 교미 장면이 생각났다. 그들은 상냥한 애무 같은 것은 생략하고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타서 허리만 움직였다.
충격이 큰 때문인지 몰라도 웰레이즈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신기하다는 것 외에는 훔쳐보는 스릴이나 성욕 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숙부는 짐승같이 거칠게 여자를 벽에 대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벽이 쿵쿵 울리고 있다. 여자의 신음소리가 높아진다. 웰레이즈는 더 참지 못하고 숙부의 집에서 도망쳤다.
세상에는 유명한 영웅담이며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무훈시나 전설, 신화는 웰레이즈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공국 동맹의 다섯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들의 국가 중에서 과거 악명 높았던 폭군 브레디안 3세가 다스리는 조브르덴 왕국에 대항하여서 지금은 없어진 다섯 공국이 동맹을 맺어 싸운 1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공국 동맹의 전설적인 다섯 기사들』에 대한 기록은 기사도 문학이자 무훈시이다.
하르디안의 일루전 나이트Illusion Knight 베르키아누스, 웨스턴 힐의 실드 나이트Shied Knight 비스토리아노, 히에말리스 라쿠스의 랜스 나이트Lance Knight 에르난디스, 아르디나크의 호크아이 나이트Hawkeye Knight 아르디앙, 에크소디아의 템플러Templar 도멜리쿠스가 주인공이며, 저자는 베르키아누스의 놈 바드, 휘케스이다. 별 볼일 없던 3류 바드이었던 휘케스는 다섯 기사들의 무훈담과 이들을 위한 노래. 10년 전쟁의 기록을 엮은 책을 열 부 찍어서 세상에 내놓는 순간에 1류 바드로 격상함을 물론 굉장한 명예를 손에 넣었다.
책을 냄과 동시에 휘케스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소문에 의하면 깊은 산속에 있는 자신의 주인 베르키아누스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고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소문에 불과하다.
휘케스의 이 작품은 수많은 양산본과 노래만을 추려낸 필사본이 수없이 나돌지만 역시 진가는 열부 찍어진 원본이 대단한 가치를 지닌 전쟁 기사도 문학으로 인정받고 추앙받는다. 한때 조브르덴 왕국에서 어떤 재력가가 각지를 떠돌던 원본 한 권을 십만 루덴을 주고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숙부도 이 원본을 한 권 가지고 있었다. 웰레이즈는 책을 보게 해달라고 끈질기게 졸랐으나, 숙부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양산본이라고는 해도 웰레이즈에게는 이를 구입할 마땅한 교환 수단이 없었다. 숙부가 가지고 있는 원본은 강력한 잠금과 트랩 마법이 걸린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 그로서는 열 방법이 없었다. 결국 웰레이즈가 선택한 길은 인간의 마을로 가는 것이었다. 마을을 몰래 빠져나오는데 성공하면 록울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알렉세이라는 도시를 방문한다. 시립 도서관에 양산본 한 권이 보존도서 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를 읽기 위해 웰레이즈는 성인식 준비에 바쁜 엘프 마을을 몰래 빠져나왔다.
웰레이즈는 새벽에 도시를 방문했다. 중앙 지역이라면 아침잠 없는 시민들이 하품 하면서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각 지역 쪽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심스럽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왼쪽 성벽 길을 걸어서 도시 정중앙에 빗겨나가게 위치한 도서관에 다다르면 고대 풍의 주춧돌과 원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지붕과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들이 방문자를 반긴다. 도서관 바로 옆에는 널찍한 광장이 있어서 포럼이라 부르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철학, 시사의 토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 정오 즈음이 되면 이곳은 매우 북적거린다.
흔히 동부 사람은 토론을 좋아하며 철학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생업에 바쁜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지만 나이 들어 노후를 보내는 노인이나 철학을 한답시고 펜과 혀를 뇌까리는 자들을 가리켜 실리적인 서부 사람들이 비꼬는 말이다.
포럼 바로 옆에는 시청이 세워져 있고, 문 앞에 험악한 산악지형으로 유명한 아베스트 산맥에 사는 산 사나이들이 고용되어 두꺼운 갑옷을 입고, 긴 미늘창을 꼬나 쥐고 시청 경비를 서고 있다. 사는 곳이 산악지형인 탓에 용병으로 살아가는 아베스트의 남자들은 우락부락한 외모에 용맹하고, 우직한 성격을 충성심으로 보는 사람들이 선호하기에 각지에 고용되어 있다. 이름 높은 에크소디아의 대신전에도 베테랑 병사들이 고용되어 철통경비를 서고 있다고 한다.
이 우직한 병사들은 이른 아침에 도서관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 엘프를 보고 신기한 것을 보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사는 곳에는 겨울 늑대나 스노우 트롤 혹은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들만 있어서 엘프는 잘 볼 수 없다.
시립 도서관 관리인인 한스 씨는 도서관 관리 경력만 25년의 베테랑이다. 나이가 들면 잠이 적어진다는 것은 사실인지, 컨디션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요즘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그렇지만 끝없이 나오는 하품은 막을 수 없다. 옷을 챙겨 입고 도서관 문을 열기 위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정문으로 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문 너머로 이상한 기운이 풍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0여년을 산 경험이다. 열쇠로 도서관 정문을 여는 순간에 무엇인가가 쏜살같이 튕겨나갔다. 창졸간의 일이라서 제대로 확인 할 수 없었다. 다만 뒷모습이 은발에 뾰족한 귀인 엘프인 것을 확인하고 가끔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 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내 표지판을 내놓고, 도서관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그날도 해가 뜨고, 하늘은 푸른 것이 날씨가 참 좋았다.
보존도서실로 가보니, 아직 사서 아가씨가 나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기다렸을 테지만 웰레이즈는 급한 성미에 기다릴 수 없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다 읽지 않은 최후의 전쟁 신 부분을 다 읽고 싶어서였다. 안에서 세 번째, 왼쪽으로 둘째 칸, 위에서 네 째 칸에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꽂혀있는 것을 보고 얼른 뽑아내었다. 웰레이즈는 전에 읽다만 부분을 펼쳤다. |